이수희 기자
세상을 바꾸고 사라진 '엔진혁명가'…'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책 표지 이미지 [세종서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전 세계 도로를 달리는 트럭과 버스, 바다를 가르는 선박, 대륙을 잇는 기차 등 수많은 운송 수단이 '디젤엔진'을 동력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익숙한 '디젤'(Diesel)이라는 단어가 루돌프 디젤이라는 한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디젤이 1913년 9월 29일 런던행 여객선에서 실종돼 사망했으며, 그의 사인이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상하리만치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의 소설가 더글러스 브런트가 최근 출간한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세종서적)는 디젤엔진을 발명한 독일 공학자 루돌프 디젤의 삶과 실종 사건을 다룬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조사해 디젤의 삶과 발명, 실종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디젤엔진이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어떻게 세계 경제와 군사 전략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한 천재적 발명가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담담하게 추적한다.
1858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디젤은 궁핍한 가정 형편 탓에 어린 나이부터 공방에서 일해야 했다. 다행히 기계에 대한 타고난 관심과 재능 덕분에 뮌헨 공과대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할 수 있었다.
공학자가 된 디젤의 관심은 에너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기관을 만드는 데 있었다. 1893년부터 새로운 내연기관 개발에 몰두한 디젤은 4년 만인 1897년 디젤엔진을 만들어 냈다. '압축착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 엔진은 기존 증기기관보다 훨씬 높은 연료 효율로 더욱 강한 동력을 제공했다.
디젤의 엔진은 빠르게 산업과 군사 분야에 도입됐다. 전함, 열차, 공장 설비 등 대형 기계의 핵심 동력원이 된 것은 물론 증기기관을 대체하며 산업 구조를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특히 많은 군사 전략가가 군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잠수함과 전함이 석탄에서 디젤로 전환되면서 해상전력의 개념이 바뀌었고, 각국은 디젤엔진을 활용한 군비 확장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디젤엔진이 모든 사람에게 반가운 혁신은 아니었다. 석탄 기반 산업을 주도하던 세력과 석유 시장을 독점하던 거대 자본가들은 이 새로운 기술을 경계했다. 특히 미국의 석유 재벌 존 D. 록펠러는 디젤엔진이 석유가 아닌 식물성 기름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석유 의존도가 낮아지면 에너지 시장의 패권이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13년 9월 29일 디젤은 런던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랐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못했다. 디젤이 항해 도중 흔적도 없이 사라진 2주 후 심하게 훼손돼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시체 한 구와 디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류품이 북해에서 발견됐다.
책은 디젤의 실종에 대한 가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각각의 타당성을 살펴본다. 첫 번째는 극단적 선택설이다. 당시 디젤이 사업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증언이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또 디젤이 미리 작성한 유서에 "내가 할 일이 없기에 나는 살아갈 뜻이 없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는 점도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는 근거로 제시된다.
음모론자들은 두 번째 가설인 타살설에 집중한다. 당시 디젤엔진은 산업과 군사 분야에서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었다. 디젤의 기술이 특정 국가나 기업의 독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용될 경우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산업계 혹은 정치적 이해관계자들이 그를 제거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는 현재까지 전무한 상황이다.
저자가 가장 힘을 싣는 마지막 가설은 디젤이 실종 사건을 꾸며 영국에 망명했다는 것이다. 디젤이 사석에서 공공연하게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독일 정부에 대한 혐오감을 피력했다는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북해에서 발견된 시체의 신원이 끝내 밝혀지지 않은 점도 영국 망명설의 진실일 가능성을 높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승훈 옮김. 424쪽.
hy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